<작은 연못>의 데자뷰 소설들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작품은 역사적 사실, 그것도 금기되고 기피하는 슬픈 역사적 사실을 '극'이라는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근리 학살 사건은 영화화되기에는 너무 슬프고 알려지지 않은 소재다. 더군다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이라는 방식이라면 더욱 한정된 선택권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 사실과 생생히 살아있는 유족들의 눈에 억눌리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미션이라니. 감독의 고뇌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제주 4.3 당사자의 3세로서 노근리의 영화화와 무관하지 않다. 4.3 당시 제주도민 희생자는 3만 명(제주4.3위원회 백서2008)으로 인구의 1/10에 해당한다. 한 집 건너 친척관계인 섬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4.3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제주4.3의 진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내가 대학 다니던 2000년대 초반까지 의식 있는 제주 젊은이들의 큰 고민이었다. 그 고민의 1세대는 소설가 현기영이다. 현기영은 제주4.3을 순이삼촌이라는 개인의 내적인 불행으로 재현해낸 기념비적인 작품 <순이삼촌>을 쓰고 나서 공안기관의 모진 고초를 당했다. 그는 한 강연회에서 "제주4.3으로부터 수십 년간 도망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로부터 십여 년간 도망나와 있는 셈이다.
<작은 연못>을 이야기하며 엉뚱하게 제주4.3 이야기를 한 것은 작품이 그만큼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순이삼촌>보다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역사적 불행(광주 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최윤) 역시 한 미친 소녀의 시선을 통해서 당시의 처절한 상황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들 성공한 작품들의 공통점은 '소설'이라는 형식을 썼다. 영화를 써서 성공한 작품은 지금까지 극히 드물었다.
개인, 가족 이야기... <작은연못>의 선택은 "마을"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한 영화 <작은 연못>이 성공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돈을 벌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회적 의미를 위해서는 상업적 성공도 선행되어야 한다.
떠오르는 영화는 <할매꽃>이다. 할매꽃은 차별이 심했던 상대마을, 중대마을, 풍동마을 주민들이 전쟁을 계기로 감정의 골이 폭발해 비극적인 학살을 저질렀던 사건을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열거한 작품의 키워드만 보면 개인, 가족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개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 처지에 맞추었을 때 영화는 호소력을 갖는다. <작은 연못>은 마을을 선택했다. <작은 연못>은 한 마디로 "대문 바위골 주민들의 생존드라마"다. 한국전쟁 초 1950년 7월, 한반도 허리쯤에 위치한 산골짜기 대문 바위골 짱이의 마을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소개령이 내려지고 마지막으로 몰살 명령이 내려지기까지의 전후 과정이 영화의 전체 맥락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은 '적성마을'로 분류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다. 적성마을로 분류되면 '태워 없애고 굶겨 죽이고 죽여 없애는' 이른바 '삼진(三盡) 작전'의 총구를 피할 수 없었는데 짱이네 마을은 불행하게도 적성 마을로 분류된 듯하다.
영화를 보지 않고 단순히 노근리 사건만을 연상한다면 학살에 무게감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이 영화를 살펴보면 '학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학살에도 불구하고'의 과정이 몹시 중요하게 그려져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살아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살아 돌아온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전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학살과 폭력의 이미지밖에 남아 있지 않은 나에게 <작은 연못>은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이미지를 선사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낸다면 만화가 강풀이 <작은 연못>을 만화로 그린 <짱이>라는 작품처럼 아이들의 시선을 좀 더 담아냈다면 좋겠지만, '생존'을 목전에 둔 마을 사람 전체의 처지를 담아내려 한 <작은 연못>의 연출에 큰 유감은 없다.
평생토록 연극 연출만 헀던 이상우 감독의 영화라 그런지 영화를 보고 한참이 지났지만 되새겨볼 대목이 자꾸 생각난다. 아무래도 본개봉 때는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변. <작은 연못>이 스스로 관객을 모아낼 힘이 있을까?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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