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팝송

[스크랩] Scarborough Fair (영화 졸업)

구반 2009. 11. 27. 11:57







1964년도에 “비틀즈”는 미국 동부에 상륙을 하고, 그 유명한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을 한다. 그리고 엄청난 문화적인 파문(의상과 헤어스타일 까지)을 미국 전역에 퍼트리게 되는데, 이를 가르켜 “British Invasion"이라고 표현한 평론가도 있었다.
(그리고, "Rolling Stones"를 비롯한 수많은 영국 가수와 밴드들까지 덩달아 같이 인기를 누렸으니까)
그러나 이런 일에도 “King of Rock'n'Roll" 이라 칭송을 받던 “Elvis Presley"와 또 ”Paul Simon"과 "Art Garfunkel", 두 사람으로 이루어 진 “Simon & Garfunkel"은(아래 사진) 영국의 침공자들과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은 것 같다.)



“올테면 오는 거고 우린 그저 우리의 길을 갈뿐이다”라고 말 한 대로, 아닌게 아니라 “Simon & Garfunkel"의 히트곡들 행렬은 오히려 1960년대 중반에도 멈출 줄 을 몰랐고, 더군다나, 1967년에 이들의 기존 히트곡들이 삽입이 된 바로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이래 그들의 인기는 더욱 폭발적이었다.
한국의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이 “듀엣“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로 1960년대 들어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포크송“이라 흔히 불리는 장르로그 출발 방향을 정하고 이후 약10년 간 수많은 명곡들을 발표하게 되는데,( 최대 명곡은 역시위의 사진과도 같이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다.) 1970년대부터는 각각 솔로로서도 좋은 곡들을 많이 남겼다.
특히 시적인 가사로 유명한 “The Sound of Silence"는 1960년대 중반에 “비틀즈”의 많은 노래들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나중에 이 영화에서도 역시 몇 번씩 들을 수 가 있었다. )



1990년대에 세계적으로 큰 유행물결을 탄 “뮤직 비디오” 열풍은 따져보면 절대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음악계와 영화계에서 (이런 영향을 끼친) 역사의 원천을 따라가다 보면 그 원류에서 바로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이렇게 이 영화 “졸업”은 음악계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볼 때 도 매우 의미가 깊은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어 38분경에서 43분경까지 약5분 동안 대사 없이 "사이몬 과 가펀클“의 노래, 두곡이 매우 멋진 편집 장면들(아래 사진/ 풀장 장면 포함/ )과 함께 계속 이어져 나오고,)



또 1시간 13분경에도 “Scarborough Fair"가 ”SF”의 금문교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흐르는데 1960년대에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훌륭하게 만들어진 이 장면들은 문자 그대로, 완벽한 “뮤직 비디오“(의 원조?) 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영화음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이런 점들 외에도 이 영화는 삽입곡 (Collaged Soundtrack/ Non Original Music)의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 1969년의 “Easy Rider" 같은 영화들을 탄생케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으며, (두 영화의 큰 차이점은 “Easy Rider"와는 달리 이 영화는 많은 삽입곡들과 함께 "Dave Grusin"과 “Paul Simon" 이 이 영화만을 위한 음악 공동 제작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Ennio Morricone"같은 영화 음악가들이 주로쓰는
주제곡의 사전 제작이라는 기막힌 발상을 많은 이들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부모의 친구 부부이자, 자기한테는 엄마뻘 되는
“미세스 로빈슨”(Anne Bancroft, 1931, 뉴욕 )
어쩌다 성관계를 맺는 대졸 백수,
“벤자민 브래독”(Dustin Hoffman, 1937,LA),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부모의 강요 속에 그 집의 딸,
“일레인”(Katharine Ross, 1940, LA)과도 데이트를 할 수 밖 에 없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꽤 노력은 하였으나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마음은 (젊음의 욕망?) 또 다시 그녀와도 관계를 맺게 한다. )




당시에 사회적으로도 엄청나게 큰 충격을 준 이 영화를 좋게 보는 어느 학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고뇌 하는 젊은 “벤자민”이 그 돌파구로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성”을 택한 것이라고 변명 했지만 그러나 이런 설정은 한국적인 윤리관 뿐만 아니라 서구적인 윤리관으로 볼 때도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베를린 태생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연출경력을 쌓아오다 1966년에 “Who 's Afraid of Virginia Woolf?"라는 문제작으로 단숨에 성공한 감독,“Mike Nichols”(1931, 독일)도 바로 자신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를 해설 하면서, “광기를 통해 자기를 구원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1960년대의 미국 사회풍조 (특히 성 풍조)를 반영하고 또 고발“하였다고 하였는데 역시 이 영화에 대한 범사회적 인 비판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던 것 이었다. )



 

원래 “Robert Redford"와 ”Candice Bergen"을 염두에 두고 기획하였다는 이 영화를 통해 주인공으로 데뷔한 “Dustin Hoffman“은 일약 깜짝 스타가 되었다.
뉴욕의 “옾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공연 중에 오디션을 보게 된 그는 신체조건이나 외모에서(원작 소설에는 주인공이 183Cm의 키에 금발의 건장한 청년으로 묘사) 경쟁자, 10 여명중에 최하위 성적을 받았으나 어벙한듯하면서도 진솔한 특이한 연기로 인하여 최종 선발이 되었다는데 (감독은 소름끼칠 정도의 연기라고 표현함)



“Katharine Ross“(위의 사진)와 함께 매우 너무나 잘된 캐스팅으로 손꼽히고 있다.
단돈 천 달러 에 원작 판권을 입수한 이 영화는 1968년도의 최고흥행 영화(1967년12월 개봉)로 기록이 되었는데, 오늘날 화폐가치로는 약2억 달러에 해당하는 5천만 달러의 흥행실적을 올렸고, Mike Nichols”에게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게 해주었다.


출처 : 햇살 가득한 정원
글쓴이 : 캔디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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