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Jakob L. F. Mendelssohn
1809∼1847 Sir Neville Marriner,
Con The 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
바이올린 협주곡중 최고의 금자탑으로 손꼽히는 이곡은..
아름다운 가락과 정열에 넘친
풍부한 색채감이 전곡에 넘처 흐른다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하나이다.
멘델스존이 이 마단조 협주곡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38년(29세)의 일이지만 완성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1844년(35세) 9월이었다.
속필가인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장시일이 걸렸는데
그렇게된 데에는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착수하기 전해에 세실 살로테 소피 장르노와
결혼해서 행복하고 다망한 신혼 생활에
�i기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라이프찌히 음악원의 창설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고, 버밍검 음악제와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의 지휘자로서 연주활동에도
몸을 쪼개야 했던것등,
차분히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는 것이
외부적인 이유였다.
그리하여 이 곡은..
이듬해 페르디난드 다비드의 바이올린 독주로
라치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당시 멘델스존은..
건강의 악화로 부지휘자인 닐스 가데에게 지휘를 맡겼다.
다비드와 멘델스존은 어렸을적 친구로 같은
오케스트라의 악장과 지휘자 사이였고
서로 오랫동안 교우를 지속했다.
이 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도..
다비드로부터 많은 조언을 충실하게 듣고
신중하게 작곡해 나갔다.
따라서 이 협주곡이 다비드에게 헌정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일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파 음악이 낳은 협주곡 으로서는
기념비적인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부드러운 낭만적 정서와 균형잡힌 형식미는
멘델스존의 모든 작품에 공통된 특징이지만
이 두개의 측면이 이곡에서 처럼 잘 조화된 작품은
이 곡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고 할만큼
멘델스존이 우리에게 남긴 최대의 유산이다.
영국의 스텐실 베네트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교하면서
아담과 이브라고 평했다.
이 평을 전면적으로 긍정할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화려함이나 섬세함, 그리고 유려함에 있어서
베토벤의 것보다 훨씬 여성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곡은 고전적 형식에 의해 씌여졌지만,
전체적으로 로맨틱하고 도처에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예컨데 전 3악장이 중단없이 연속해서 연주되는 것이나,
제1악장의 서두부터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
것이나 스스로 카덴차를 써서..
로맨틱한 정서가 중단 되는것을 막고 있다던가
제1악장의 독주 카덴차가 재현부 다음에 연주되는
관례를 무시하고 발전부 다음에 온다는점 등은
당시로서는 다 대담한 수법이었던 것이다.